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몰락 작전 (문단 편집) === 코로넷 작전 === || [[파일:attachment/b0052733_475421b100a69_(1).jpg]] || || 코로넷 작전(Operation Coronet) 간토 침공 작전 시 미군 상륙 예상지점과 일본군의 배치. || 코로넷 작전은 1946년 3월 1일에 혼슈 지방에 '''720,000명'''의 병력과 약 '''3,000기'''의 항공기를 동원하는 관동 상륙 작전이다. 상륙 뒤 '''[[도쿄]]로 진격한다.''' 이 코로넷 작전에서는 상륙 예정 지역에 대한 대규모 항공 공격, 함상 포격이 2월 13일(Y-15일)부터로 올림픽 작전(X-1일)보다 길게 잡혀있었는데, 이것은 큐슈보다 시간에 여유가 있기에 일본군도 그만큼 방비를 굳힐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. 또한 소해와 수상 장애물 제거에 투입될 시간도 2월 24일(Y-4일)부터로 올림픽 작전보다 길었는데, 물론 이 이후에도 간토 각지에 대한 대규모 폭격은 더 밀도 높게 실시될 예정이었다. Y-day는 1946년 3월 1일로, 주 상륙지점은 치바 현 쿠쥬쿠리 해안과 가나가와 현 사가미 만 두 곳이었다. 쿠쥬쿠리 해안에 상륙하는 부대는 호지스 대장의 미 제1군으로, 작전투입 병력은 Y-day에 미 제24군단(제7, 27보병사단)과 제3해병상륙작전군단(제1, 4해병사단)이 선봉으로, 3월 6일(Y+5일)엔 제96보병사단과 제6해병사단이, 그리고 3월 31일(Y+30일)에는 가칭 B군단(제5, 44, 86보병사단)이 상륙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. 또한 사가미 만에는 아이켈버거 중장이 지휘하는 미 제8군이 상륙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Y-day에 미 제10군단(제2, 4, 31보병사단)과 미 제14군단(제6, 32보병사단)이, 3월 6일(Y+5일)에 제37, 38보병사단이, 3월 11일(Y+10일)에 미 제13군단(제13, 20기갑사단)이, 3월 31일(Y+30일)에는 가칭 D군단(제4, 8, 87보병사단)이 상륙하는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다. 이 밖에 미 제8군은 예비로 제97보병사단을 편제하기로 되어있었는데 그 외에도 태평양 방면 육군부대의 예비로(전략예비대도 포함) 가칭 C군단(제28, 35보병사단, 2공수사단)과 가칭 E군단(제91, 95, 104보병사단)이 또 있었다. 이렇게 사가미 만에 상륙하는 미 제8군의 병력은 제1군보다 많았는데, 제8군이 담당하는 사가미 만이 코로넷 작전의 주공방면이었기 때문이다.[* 사실 상륙작전에 적합한 곳은 쿠쥬쿠리 해안 쪽이었는데 그곳은 해안가의 면적도 넓고 근처에 여러 항만이 있어 상륙 후 교두보 확보에는 좋았지만 문제는 그곳에서 간토 내륙으로 향하려면 에도가와나 아라카와 등의 하천하구가 있어 이후 진격에 꽤 어려움이 있으리라 예상되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